작가 인터뷰

‘나는 메타버스에 살기로 했다’ 서승완 작가님 미니인터뷰

2023-10-01
서승완 작가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영남대학교 메타버스 캠퍼스를 개발하고 운영하고, 지금은 메타버스 관련 회사 유메타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개발자라기보다는 메타버스 거주민으로 불리길 원합니다.

‘나는 메타버스에 살기로 했다’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을 통해 메타버스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움직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걸 통해 새로운 바람이 만들어지길바랬습니다.

메타버스는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책 쓰는 과정은 어땠는지요? 어렵진 않으셨나요?

네, 책 쓰는 과정 자체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경험했던 것들이라지만, 다시 회고하고 정리하고 어떤 틀에 맞추어 많은 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건, 창작에 버금가는 일이더라고요. 아무래도 학생들이 다 같이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에 잘 기억 안 나는 일들은 하나하나 물어봐야 했고, 그 속에서 찍은 사진도 정리하느라 정말 쉽지 않았어요.

저는 몰입하려면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책 자료를 모은 후에는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일주일 동안 호텔에 틀어박혀서 밥만 먹고 글만 쓰니 꽤 많은 분량을 쓸 수 있었고, 보다 빨리 출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메타버스 캠퍼스를 개발하셨나요?

사실 제가 메타버스를 처음 기획하고 개발할 때만 해도, 세간에 메타버스라는 말 자체가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전국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메타버스 캠퍼스를 만든 이유는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었어요. 팬데믹 때문에 우리들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수업은 겨우 온라인 강의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게 대학 생활이 맞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이 단순하게 공부만 하고 시험만 치고 그런 곳이 아니잖아요.

시끌벅적한 대학가, 연인과 캠퍼스를 거니는 낭만, 누군가를 만나고 교류하며 사회를 배우는 곳. 그런 대학의 기능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좋아하던 마인크래프트를 기반으로 메타버스 캠퍼스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메타버스 캠퍼스를 만들고나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메타버스 캠퍼스는 처음 40명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400명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모두 다 대학 생활이 그리웠던 것이지요.

그런데, 전공이 철학이시잖아요. 어떻게 철학도가 왜 메타버스 캠퍼스를 만들 수 있었나요?

최근 ‘메타버스가 끝났다. 식었다. 메타버스 별거 아니더라’하는 이야기가 세간에 많습니다. 사실 저도 충분히 동의하는 이야기이죠. 뉴스를 보면 메타버스로 다양한 행사를 하는데, 막상 그런 참가하면 현실처럼 의자에 앉아서 지루한 이야기 듣고, 별다른 재미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캐릭터 조작을 못 해서 행사의 방향이 엉뚱하게 흐르고 행사를 그르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종류의 양산성 메타버스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영남대 메타버스는 그런 공간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신입생을 위해 입학식을 준비하고, 선후배가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입학식을 진행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즐거워서, 친구를 만나고 선배를 사귈 수 있어서, 입학식에 참가한 학생들이 그 뒤로도 계속 메타버스에 와서 서로를 만나는 것이죠.

결국 메타버스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사는 공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질서와 사회의 밑그림을 그리는 건 철학의 영역이지요. 이런 철학을 기반으로 메타버스를 디자인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철학도인 제가 메타버스를 만들 수 있었고, 지금까지 운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남대 메타버스 캠퍼스는 어떤 곳인가요?

메타버스 캠퍼스라고 하면 진짜 캠퍼스 건물만 달랑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많이들 하는 오해입니다. 영남대 메타버스 캠퍼스는 실제 영남대 캠퍼스를 그대로 옮긴 거울 세계와 현실에는 없는 가상 세계가 공존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도 학교를 다닌다고 학교에서만 계속 살지는 않잖아요? 메타버스도 똑같습니다. 학교를 방문해서 놀고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남대 캠퍼스를 벗어나면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집과 마을들이 나옵니다. 누가 만들라고 시킨 건 아닙니다. 각자 서로의 집을 짓다 보니 그 집을 연결하는 도로가 생기고, 인프라가 갖춰지며 마을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분쟁이 생길 수 있고, 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규칙이 나옵니다. 물물교환을 하다가 화폐가 생기고, 상업 활동이 활성화됩니다. 또, 그러다 보면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발생합니다. 그걸 해소하기 위한 복지가 생기고, 부동산 문제도 생깁니다. 정말 현실과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전공을 실전에서 실험해 보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다. 경제를 전공하는 학생이 경제 정책을 펴고, 언론을 전공하는 학생이 라디오 방송국을 만들 게 됩니다. 놀이나 소통을 넘어서 공부와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메타버스 사회가 형성이 되는군요.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또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일 문제가 되었던 일은 부동산이었습니다. 원래 마인크래프트를 처음 시작하여 우리 캠퍼스를 접속하면 광활한 자연이 펼쳐집니다. 그곳을 개간해서 자신만의 집을 짓습니다. 근데 누가 하루 종일 열심히 개간하고 메타버스를 나갔는데, 다른 사람이 거기에 집을 지어버린 일이 생깁니다. 그로 인해 많은 분쟁이 생겨났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진들이 머리를 싸맸고, 우리만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저희는 영남대 메타버스 안의 모든 토지를 동일한 크기로 구획하고 주소를 부여했습니다. 그걸 모두 관리진의 소유로 만들었지요. 그러니까 현실로 치면 국유화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분양하였어요. 또 메타버스 내 화폐로 토지를 구입할 수 있도록 화폐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소유권을 구입해서 집을 지어야만 그 토지의 사용권과 지상권 등이 인정되는 것이지요.

앞으로의 메타버스는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하시나요?

코로나 이후 메타버스 산업은 우선 대중의 관심은 조금 식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산업은 이전부터 계속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성장해갈 것입니다. 오히려 팬데믹 시국 속에서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한번 맛보았기 때문에 훨씬 가속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팬데믹 이후 ‘메타버스가 끝났다. 의미 없다’는 의견도 많지만, 우리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메타버스 캠퍼스가 햇수로 3년 차를 맞이하는데, 금년도(2022년 8월 현재)에 가장 많은 인원이 늘었습니다. 거의 100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가는데도 말입니다.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들어와 영남대 메타버스 캠퍼스에서 친구를 사귀고 선배를 만납니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오프라인 만남이 더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타버스가 우리의 삶을 더욱 증강 시켜주고, 윤택하게 해주며, 관계를 가속화하는 거점이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에서 누군가를 먼저 만나면 사람에 대한 큰 편견이 없어집니다. 서로를 아바타로 보니까 말이죠. 그래서 더 쉽게 친해지고 현실보다 많은 추억을 제약 없이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상태로 현실(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더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네 긴 인터뷰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나는 메타버스에 살기로 했다” 저자 서승완 작가님의 인터뷰였습니다.

/[애드앤미디어 인터뷰] 나는 메타버스에 살기로 했다